환대
'더 베어(The Bear)'라는 미드를 꽤 좋아하는 편입니다. 시즌1의 경우 여러 회차를 반복해서 볼 정도였습니다. 우연히 디즈니 플러스 구독권이 생겨 처음 접했던 작품인데, 이후 시즌이 계속 나온다는 소식에 마음먹고 디즈니 플러스를 재구독했습니다. 퇴근길에 조금씩 챙겨보다 어느덧 전 시즌을 완주했습니다.
'더 베어'를 다시 보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어떤 에피소드에 대한 극찬 때문이었습니다. 시즌2의 에피소드7입니다. 이 에피소드는 더베어 팬이라면 누구나 다 최고의 에피소드로 뽑는 편 중 하나인데요. 극 중 항상 금쪽이 같았던 '리치'라는 인물의 변화와 성장을 정말 극적으로 담아낸 편입니다.
극의 내용을 제가 직접 다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이 에피소드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환대'입니다. 리치는 인턴으로 1주일간 일하게 된 레스토랑에서 직원들이 몇 시간씩 포크를 닦는 것, 물 자국 하나에도 유난을 떠는 모습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결국 이러한 견해 차이로 큰 갈등을 겪게 되죠.
리치를 담당하는 선임 팀원은 그를 밖으로 불러내 이렇게 말합니다.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정말 이 일을 사랑하고, 우리 레스토랑에 오는 사람들이 얼마나 오랜 시간 간절히 기대하며 방문하는지 아느냐, 이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고 최고의 만족을 주고 싶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리치는 그 이야기를 들은 이후 조금씩 변하기 시작합니다. 이들이 왜 광적으로 디테일에 집착하고, 아직 방문하지도 않은 고객의 신변과 취향을 조사하면서까지 식사를 준비하는지 이해하게 됩니다. 그래야만 어떤 부분에서의 모자람 없이 최고의 만족을 줄 수 있는 것이죠.
정말 신기했던 것은, 제가 최근 재밌게 읽고 있던 '놀라운 환대'라는 책을 극 중에서 리치도 읽는다는 점이었습니다. 리치는 그 책을 읽으며 조금씩 이 일을 사랑하게 되고, 고객이 만족하는 모습을 보며 방황하던 자신의 역할과 목표를 다잡아 나갑니다. 그 장면이 나올 때 마침 제 가방에 그 책이 있었다는 사실이 신기하기도 하고, 제가 고민했던 것에 대한 힌트를 주는 것 같아 묘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제가 팀에 자주 이야기하는 단어 중 하나도 '환대(Hospitality)'입니다. 저는 어떤 서비스든 고객과의 접점이 있다면(사실 고객 접점이 없는 서비스는 없죠) 모두 '환대'를 해야만 하는 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제품과 서비스, 경험 모든 것에 극도로 집착해서, 결국 모난 곳 없이 모든 부분에서 가장 큰 만족과 기분 좋음을 느끼게 하는 것이 모든 서비스의 지향점이어야 한다고 봅니다.
내부 사정으로 인해 고객의 만족과 환대가 뒷전이 될 때가 많습니다. 아예 뒷전으로 밀린다기보다는, 순간순간 잊혀진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다른 것은 다 포기하더라도 고객의 만족과 감동만큼은 어느 순간에도 가장 앞에 있어야 합니다. 결국 그렇게 되면 고객은 그 순간의 경험을 잊지 않을 것이고, 우리를 다시 찾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가 '호텔'을 하나 만든다고 생각하며 일합니다. 우리 건물이 어떤 모습이면 좋을지, 문 앞에 들어섰을 때 느껴지는 향과 빛은 어떤지, 머무름의 경험은 매끄러운지, 모든 서비스 과정에서 불편함은 없는지 등을 생각하면서 말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정말 할 일이 많아집니다. 어느 하나 거슬리지 않는 것이 없죠. '이 부분은 이렇게 개선해야 고객이 조금이라도 더 만족할 텐데?'라는 생각을 끊임없이 하게 됩니다.
괜히 레스토랑이나 호텔업 쪽이 힘든 업무 환경을 가진다는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저희는 실제 고객을 면대면으로 만날 일이 많지 않지만, 환대업에 종사하시는 분들은 실제 고객을 대면하며 최고의 만족을 드려야 하니까요.
'더 베어'를 통해 꽤 중요한 것을 다시 한번 배우고 느낀 것 같습니다. 진정한 환대는 거창한 무언가가 아니라, 상대를 생각하는 마음에서 시작되는 수많은 디테일의 집합이라는 것. 그리고 그 마음이 담긴 경험은 누군가의 인생을 바꿀 수도 있다는 것 말이죠. 앞으로도 우리만의 '호텔'을 조금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더 열심히 고민해야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