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주
창업을 하고 나서 얻은 가장 큰 소득 중 하나는 저라는 사람에 대해 참 많이 알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매번 선택의 기로에서 '나는 왜 이런 결정을 할까?', '내가 진정으로 추구하는 것은 무엇일까?'를 고민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최근에는 저의 새로운 모습을 하나 발견했습니다. 치열하게 살고자 노력하지만 다른 한쪽으로는 안주하고 머무르고 싶어 한다는 사실입니다. 가만히 있어서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고 성장할 수 없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면서도 말입니다. 편안함을 쫓는 것은 참 강한 본능입니다.
요즘 회사에 감사한 일들이 꽤 있었습니다. 여전히 치열하지만 적어도 매일 밤잠을 설치게 하던 '생존' 그 자체에 대한 공포는 조금 줄었습니다. 매출과 이익이 안정화되면서, 이제는 생존을 넘어 확보된 자원을 어떻게 레버리지 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단계로 진입하고 있습니다.
어느 정도 터널을 벗어났다고 느꼈던 지난달, 찰나였지만 온몸의 긴장이 풀리는 듯한 행복을 느꼈습니다. 속으로 '다행이다'라는 말을 수십 번은 반복했던 것 같기도 합니다. 누구에게도 말 못 할 압박감이 풀리면서 찾아온 묘한 해방감이었습니다.
하지만 안도감은 사람을 무디게 하기도 합니다. 위기를 넘긴 직후의 만족감은 사고 회로를 묘하게 느슨하게 만들었습니다.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무리하지 말고 내실만 다져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슬며시 스며들었습니다. 살면서 처음 해보는 종류의 생각이었습니다. 그 잠깐의 편안함이 저도 모르게 좋았던 모양입니다.
문득 부끄러움이 밀려왔습니다. 평소 제가 팀원들에게 '불편해야 성장한다'고 입버릇처럼 강조했기 때문입니다. 정작 저는 편안함을 찾고 있었다는 사실이 모순처럼 느껴졌습니다. 제가 하지 못하는 것을 남에게 요구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에 대한 회의감도 들었습니다.
생각을 고쳐먹고 리스트를 적어보았습니다. 지금 내가 가장 피하고 싶은 것, 굳이 할 필요가 있을까 싶은 것, 생각만 해도 스트레스가 되는 '불편한 일'들의 목록이었는데요. 그걸 적고 나니 오히려 확신이 생겼습니다. 이 불편한 일들을 해낸다면, 우리는 지금보다 훨씬 더 큰 목표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입니다. 내키지는 않았습니다. 회사가 자립하면 절대 하지 않으려 했던 일들도 포함되어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불편함'이 성장의 본질이라면 피하지 말고 마주하고 싶습니다. 지난주 팀에 이 생각을 공유하고, 우리가 피하고 싶었던 힘든 길을 다시 걷기로 했습니다. 누군가는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요?"라고 묻겠지만, 우리가 모인 이유가 더 큰 임팩트를 만들기 위함이라면 그 '굳이' 해야 하는 일이 당연한 과정이 되어야 하는 것 같습니다.
내년의 우리 팀은 훨씬 더 의미 있는 성과를 이루고 있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지금 세운 목표만 생각해도 벌써 속이 울렁거릴 정도로 불편하기 때문입니다. 안주하지 않고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 것. 그 불편한 실행이 새로운 기회를 만든다고 믿기에, 내년에도 기꺼이 더 열심히 불편해지겠습니다.